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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대는 미래 세대를 고려해야 하는가?
인류는 지난 몇 백 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지속해 왔다. 과학 기술력을 바탕으로 산업 생산력이 크게 발달했고, 오늘날 우리는 어떤 시대도 경험하지 못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발전이 밝은 측면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산업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자연자원을 많이 소비해야 한다. 지구에 존재하는 자원은 무한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산력이 빠르게 발달할수록 자원이 고갈되는 속도도 빨라진다. 더 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생산되는 오염물질들이 지구의 환경을 망가뜨린다는 점이다. 최근 이례적인 폭염, 가뭄, 한파가 일상이 되었지만, 우리는 아직 이를 급박한 생존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혹은 위기라고는 말하지만 익숙한 삶의 방식을 바꿀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발전이 지속된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몇 세대 이후를 살아갈 우리의 자손들은 망가진 지구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큰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몇 과학자들의 경고가 옳다면, 그리고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를 멈추지 못한다면 미래의 파국은 필연이다. 여기서 책임의 윤리가 발생한다. 이 책임은 계약 관계에 의한 책임과는 다르다. 아직 존재하지 않은, 미래에 태어날 자들을 위한 책임. 우리는 그들에게서 얻을 이익이 없다. 그런데 미래 세대는 현 세대의 선택 결과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러한 타자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는가
비록 몇 세대가 지나서 우리와 정서적 교감이 없는 어떤 사람들이 이 땅에 살게 되더라도 우리는 그들이 우리보다 더 ‘좋은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탄소 중립’에 대한 논의가 일반화되고 ‘기후 행동’에 나서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은 미래세대에 대해 어떤 의무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세대가 우리가 누리는 만큼의 풍요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는 자연자원을 충분히 남기는 것과 동시에 훼손된 것을 복구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환경과 관련된 문제뿐만 아니라 인구구조의 급속한 변화 또한 우리 사회의 중요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2019년부터 본격적인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된 이래 현재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에 속한다. 고령인구의 증가와 저출산으로 인한 미래세대 인구의 감소는 결국 미래세대의 부양 부담 증가와 경제 성장 둔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향후 한정된 자원과 사회적 비용을 둘러싼 심각한 세대갈등의 요인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정년연장이나 임금피크제 등과 같은 노동시장에서의 문제에서부터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부담률과 관련된 사안에 이르기까지, 세대 간 형평성의 문제는 현 시대의 사회문제로 급속히 표면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사회의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흔히 결혼과 출산 장려가 제시된다. 그러나 ‘N포 세대’라는 용어가 나타내는 바와 같이, 사실 청년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들이 봉착한 취업과 주거, 육아의 문제에서의 경제적 부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주거비 부담이 커졌고 맞벌이에 따른 육아비용, 사교육비용 등까지 고려한다면 청년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어버린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이에 청년세대는 과거와 동등한 의미에서 주거와 취업, 육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데 자신들에게 인류의 미래나 전통의 연속적 계승을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강요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항변한다. 더욱이 오늘날 청년세대의 기회 상실이 과거 세대들이 단기적 자기 이익만을 극대화해온 결과 초래된 것임을 지적하며, 청년세대에게 저출산·고령화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전쟁 이후의 사회 복구나 공적연금의 개혁 과정에서 세대 간의 대립과 갈등을 이미 경험한 바 있는 일부 국가들에서는 미래세대에 대한 고려를 입법 단계에서의 필수 전제 조건으로 지정하고 있다. 현재세대의 삶의 양식이나 결정이 미래세대의 생존과 번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음을 생각해볼 때, 현재세대는 일정한 희생과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미래세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현재의 청년세대가 지속적으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한다면, 미래세대가 지게 될 경제적·사회적 부담은 현재세대보다 월등히 클 수밖에 없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현재세대가 천연자원을 대부분 소비해버리거나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를 초래한다면, 미래세대는 존립 자체에 위협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세대가 미래세대를 고려해야 한다는 일반적 명제에는 일견 동의할지라도, 막상 현재세대의 이익과 미래세대의 이익이 서로 충돌할 경우 우리는 쉽사리 미래세대의 이익을 포기해버리고 왜 우리가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미래세대를 배려해야 하냐는 의문을 제기하고는 한다. 또한 현재세대가 고려해야 할 미래세대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되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나아가 미래세대의 인간은 현재의 우리와는 전혀 상이한 종류의 인간일 것이기에 미래세대의 이익이나 필요에 대한 현재의 가치 추정을 토대로 이들을 고려하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래세대가 생각하는 ‘좋은 삶’이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좋은 삶’과 같은 것일지도 의문이다. 특히 근대 이후 끊임없이 발전한 과학기술 덕택에 인류의 삶이 점차 윤택해왔다는 점을 근거로, 미래세대는 현재세대보다 훨씬 더 진보된 형태의 삶을 살아갈 것이기에 현재세대가 굳이 미래세대를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 또한 제기될 수 있다. 우리가 발전을 늦추거나 중단했기 때문에 오히려 새롭게 등장하게 될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미리 없애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연 현재세대는 미래세대를 고려해야 하는 것일까? 세대 간 형평성의 관점에서 현재세대와 미래세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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